멈춰 있지만—숲도 호수도, 회화도 멈추지 않는다



콘노 유키


호수를 경험하는 일은 호수 자체보다는 대체로 호숫가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사실, 이루어진다기에는 어떤 완성된 형태를 추구하지 않는다. 풀 냄새, 피부가 머금은 온도와 습기, 새가 지저귀는 소리, 물속에 보이는 것들, 물에 비친 하늘과 나의 모습. 호수는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곳은 호수로써 경험된다기보다는 호수를 둘러싼 경험으로 인식된다. 이번 개인전에서 곽지유는 회화 작업의 소재를 호수로 설정하지 않았지만, 그러면서도 작가가 종이 드로잉부터 캔버스 페인팅까지 다양하게 발전시킨 태도는 호수라는 소재에 다양하게 집약된다. 전시장 입구에 드로잉 북 <The Drawing Book>(2017)이 있다.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우리는 그의 드로잉을 본다. 뭐가 담겨 있을지, 그 형상 안에 어떤 감각이 내포되어 있는지, 이 드로잉을 남겼을 때 어떤 마음이었고 어떤 하늘 아래 작가가 있었는지—이런 생각을 하다가, 우리는 곽지유라는 한 작가, 그가 기록하고 작업해 온 회화 작업이라는 호수를 경험하게 된다. 호수 곁에서 하는 경험도 잠시, 한 마디가 나왔다. “거기/그 안에 뭐가 있어?”


곽지유의 이번 개인전 제목은 《WAS IST DA DRIN?》이다. 영어로 “WHAT IS IN THERE?”, 한국어로 “거기/그 안에 뭐가 있어?”라는 뜻이다. 이런 생각을 우리는 드로잉 북을 보면서 했을 것이다.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에서 출발하듯이 전시장에 걸려 있는 크고 작은 회화 작품과 드로잉, 입체 작업을 보게 된다. 거기/그 안에 뭐가 있을까? 작가가 독일 생활에서 본 것들, 경험한 일들, 감각적으로 와닿아 포착한 것들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호수가 보이지 않는 시점에서 떠오른 생각들과, 호수가 모습을 나타내어 내가 그 호수를 들여다봤을 때 생각이 “WAS IST DA DRIN?라는 한 마디에 담겨 있다. 전시 제목에는 호숫가에서 호수를 만나기 전과 만난 후의 심리적이고 체험적인 과정이 담겨 있고, 전시장이라는 자연 속에서 공명한다. 그런데 전시장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작품을 보고 독일어 제목을 떠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전시장은 대한민국에 있고, 이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적어도 한국(어를 하는) 사람이 더 많다. 하필 작가는 왜 독일어 제목을 가져왔을까?



당연한 이유가 있다. 바로 작가가 독일에서 생활했기 때문이다. 작가 역시, 독일에 처음 온 당시에는 “거기/그 안에 뭐가 있어?”라고 (한국어로) 말했을 것이다. 간결하고 기초 문법적인 외국어 제목은 낯선 곳을 경험함과 동시에 서서히 익혀 배워 나가는 출발점이다. 호수라는—혹은 호수로 비유할 수 있는 타지라는 낯선 곳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작가에게 외국어였던 독일어는 구조적으로 자리 잡는다. <The Drawing Book>에서 시작하여, 곽지유의 회화 작업을 보면 가로줄이나 격자가 등장하는데, 이는 타지 생활의 경험적 기반을 상기시킨다. 타지 생활에 내가 익숙해지기 위해, 처음엔 낯선 언어로 “WAS IST DA DRIN?(거기/그 안에 뭐가 있어?)”라고 ‘명확히’ 물어볼 때, 그것은 장소를 경험하거나 지도처럼 규칙적으로 구분된 시각적 표현이 되어 작품에 나타난다. <The Drawing Book>나 <By the Sea>(2020)을 보면 위에 유연한 곡선이나 동그라미, 돌발적인 선들이 그려진다. 경험적 규칙적 토대 위—‘여기’에 작가가 경험한 감각들이 자유롭게 포개어진다. 격자와 곡선의 형태적 탐구가 균형을 잡은 곳이 된다. 생각해 보니, 우리가 경험하는 호수도 범람이나 가뭄을 맞이하지 않는 이상 차오르는 선을 넘지 않게 유지하면서—<산과 물>(2017)의 격자-울타리처럼—주변 풍경을, 날씨를, 그리고 이곳을 찾는 사람의 시선과 마음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을까.


낯선 것을 보고 낯선 언어로 물어본 시기가 지나 이제는 내 언어와 감각, 경험과 균형을 잡기 시작한다. 이번 전시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드로잉 북과 같은 시기에 작업한 <Running in the woods>(2018)라는 회화가 있다. 제목대로 이해하자면, ‘숲속을 달리다’가 되는데, 작품에는 한글로 “숲을 막 뛰어다녀”라고 쓰여 있다. 줄이 쳐져 있는 공책 한 페이지를 붙인 종이 위에 동그란 윤곽이 면을 만들고, 선이 교차한다. 곽지유의 화면에 계속 등장하는 격자는 어쩌면 공책-숲의 경험이라 할 수 있다. 막 뛰어다니면서 본 숲은 경직된 세로축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사람의 곡선적 움직임이 교차되어 회화에/로 담긴다. 그러다 잠시, 이 곡선은 어느 한 지점에서 변한다. 작품에 적혀 있는 “숲을 막 뛰어다녀”라는 문장에서, ㄹ(리을)이 ㄴ(니은)으로 보이자마자, 움직임의 주체가 달라진다—“숲은 막 뛰어다녀”. 거기/그 안에 뭐가 있을까? 가로지르는 작가의 신체-손의 움직임과 함께, 견고하던 숲이 활기를 띠게 되면서 시점의 이동과 교차가 힘의 방향을 바꾼다. 어쩌면 숲이 (곽지유가) 뛰어다니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은 작가가 호수를 둘러싸서 감각하는 바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숲도 호수도 가만히 있다. 그러나 그 주변에서 내가 있음을 통해서 다르게 경험되기 시작한다. 작가가 <Moving Lakes>(2022)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숲(속)과 호수(ㅅ가)의 이미지는 시각적 형태로 공통점을 만든다. 주변에서 나를 통해 감각되는 것들—시각, 후각, 촉각, 자유로운 감각, 떠오르는 추억이나 기억, 기타 등등—은 경험적으로 응축된다. 이 응축의 이미지는 숲과 호수 사이에서 공통하는 격자와 원의 조합으로 담긴다. 규칙적이고 단단한 선 위에 자유로운 선의 감각이 교차할 때, 형상은 힘을 응축하는 고치가 된다. 임마누엘 코치아(Emanuel Coccia)[1]가 언급하는 바와 같이, 고치란 종에 고유한 것이 아니라 여러 생명체의 초월론적 형태이다. 안팎을 넘나드는 힘은 이번 전시에서 입체 작업 <Woven Lines>(2024)으로 형상화되었지만, 고치의 형상은 사실 회화 작업에도 눈여겨볼 수 있다. <I Went to the Park Today>(2023)에서 화면 속에서 둥근 형상이 흐름의 힘으로 침투하는 모습을 보면, 여기서 형상은 힘을 배양하는 동시에 퍼뜨리는 걸 알 수 있다. 다른 곳으로 퍼지기도 스며들기도 할 때, 곽지유가 보고 느낀 경험은 회화라는 또 다른 공간과의 관계 속에서 살게 된다. 회화 역시 호수나 숲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멈춘 상태에 회화는 작가의 경험—가서 보는 그러나 무엇보다, 그리는 행위를 통해서, 작품 속의 형상과 더불어 움직이기 시작한다.


[1]  エマヌエーレ・コッチャ, 松葉類(訳), 宇佐美達朗(訳)『メタモルフォーゼの哲学』, 勁草書房, 2022, p. 88-89(Emanuele Coccia, Metamorphoses, 2020 일역본)